시민사회

'푸바오 가족' 이전에 이들이 있었다… 최초로 한국에 온 판다

 판다를 떠올리면 '푸공주(푸바오+공주)'가 먼저 생각나기 쉽지만, 사실 푸바오 이전에 리리와 밍밍이 있었다. 리리와 밍밍은 1994년 9월 23일, 중국의 판다 외교의 일환으로 한국에 처음으로 도착한 자이언트 판다였다. 이들은 4년간 한국에서 사육된 후 1999년 2월에 중국으로 돌아갔다. 이들과 강철원 사육사의 인연은 한국에서 최초로 번식에 성공한 판다인 푸바오가 탄생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희귀종인 판다가 처음으로 한국에 온다는 소식에 공항은 붐볐고, 이들은 '한중 수교 대사'라는 명칭으로 국빈 대우를 받으며 입국했다. 환영 인파가 태극기를 흔들며 판다를 맞이했고, 특별히 마련된 전용 차량이 준비되었다.

 

용인 자연농원에 도착한 후, 리리와 밍밍은 '팬더월드'라는 공간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으며 사육되었고, 이곳에는 후에 '푸바오 할부지'로 알려진 강철원 사육사도 있었다. 두 판다의 이름은 한국에서 지어졌으며, 밍밍은 '명일'의 한자 '밝을 명(明)'을 두 번 넣은 이름이다. 리리는 '말리 리(莉)'라는 한자를 반복하여 붙여졌으며, 이는 재스민꽃처럼 아름답게 자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리리와 밍밍은 처음에는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고, 결국 1996년 4월 합방에 성공했다. 그러나 1999년 2월, IMF 외환위기로 인해 이들은 조기 반환되었고, 이후에 두 판다 모두 암컷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애초에 번식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판다가 성별을 감별하기 힘들다는 특성으로 인해 발생한 해프닝이었다.

 

리리와 밍밍이 돌아간 후, 17년간 한국에는 판다가 없었다. 2016년, 러바오와 아이바오가 다시 한국에 들어오면서 강철원 사육사는 리리와 밍밍과의 특별한 인연을 바탕으로 판다 번식에 성공하여 최초의 자생 판다 푸바오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한편, 강철원 사육사가 러바오와 아이바오 인수를 위해 중국 청두에 방문했을 때 18년 만에 만난 리리가 그를 알아보는 모습을 보이면서 강철원 사육사는 '진정한 판다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판다의 평균 수명은 25세로, 리리는 현재 32세 나이로 건강하게 지내고 있으며, 밍밍은 2016년 초에 24세로 세상을 떠났다.

 

'40대 대통령'은 모두 쿠데타로 집권했다... 충격적인 한국 정치사의 진실

 윤석열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탄핵심리가 진행되는 가운데, 조기 대선을 겨냥한 정치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특히 1985년생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의 대선 도전 선언이 정치권에 새로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40대 정치인의 대권 도전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이미 최연소 기록은 2022년 20대 대선의 진보당 김재연 후보(당시 41세)가 보유하고 있어 새로운 기록 경신은 불가능한 상황이다.대한민국 대선 역사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기록들이 눈에 띈다. 민주화 이전 40대 대통령은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뿐이었으며, 민주화 이후에는 40대 대통령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1997년 15대 대선의 이인제 후보(당시 49세)가 민주화 이후 가장 젊은 주요 후보였다는 점은 한국 정치의 고령화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여성 후보의 경우, 1992년 14대 대선에서 무소속 김옥선 후보가 최초로 출마했다. 이후 2012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되기까지 20년이 걸렸다. 특히 18대 대선은 총 6명의 후보 중 2명이 여성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득표율 측면에서는 1960년 4대 대선 이승만 전 대통령의 100% 득표가 최고 기록이지만, 이는 부정선거의 결과였다. 민주화 이후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만이 유일하게 50%를 넘는 득표율(51.55%)을 기록했다. 최저 득표율은 1987년 13대 대선 노태우 후보의 36.64%로, 이는 이른바 '3김 시대'의 분열된 표심을 반영한다.재임 기간으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6년으로 최장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승만 전 대통령이 12년으로 그 뒤를 잇는다. 가장 오랫동안 대선에 도전한 기록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지고 있다. 1971년 첫 출마 이후 26년 만인 1997년에 당선되기까지 네 차례 도전했다.최근 대선은 후보자의 다양성이 두드러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첫 고졸 대통령 당선 이후, 다양한 학력과 직업군의 후보들이 출마하고 있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는 청소노동자 출신 김순자 후보가 출마하는 등 후보자들의 배경이 다양화되는 추세다.